하나님을 알아가는 여행

하나님을 아는 지식 2장

김솔 2021. 8. 31. 14:51

책 나눔: 『하나님을 아는 지식』(with 김솔)
-2021년 8월 20일 금요일 오후 9시 30분/요약 및 발제 김성환


Ⅱ.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1. 정말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1)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음.
2)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우리 대부분이 자신에게 낯선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떤 명확하고 사실적인 체험을 암시.
3)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함. 복음주의자들이라면 그렇게 말하도록 되어 있음.
4) 하지만 정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우리 개인사의 특정한 사건들과 관련해서 하나님을 알아 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5)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에 대해 그처럼 생생하게 체험한 적은 없을 것.

2. 과거의 실망과 현재의 비통함을 마음속에 둔 채 살아가는가?
1)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비추어 볼 때 과거의 실망과 현재의 비통함은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2) 그것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비통함과 냉담함, 침울함에 빠져 듦.
3) 이는 베드로가 당연히 여겼던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벧전 1:8)과는 한참 거리가 멂.
4) 하나님을 정말로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얻은 것에 대해서 생각할 뿐임.
5)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그리스도…을 알고자 하여”(빌 3:7-10).
① 자기가 잃어버린 것을 ‘배설물’ 즉 ‘똥’(KJV)으로 여긴다는 바울의 말은 그것들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들을 마음속에 둔 상태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뜻.
②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가 똥거름을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겠는가?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러한 일을 함.
③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줌.

3. 직접 아는 것과 들어서 아는 것.
1) 우리 자신에 대해 직면하기.
① 우리는 복음을 분명하게 진술할 수 있고, 건전하지 못한 교리는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감지해 낼 수 있음.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즉시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있음.
②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특징인 쾌활함, 선함, 자유로움 등은 우리에게 거의 나타나지 않음.
③ 아마도 복음 진리를 비교적 덜 분명하고 덜 완전하게 아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봐도 더 드물게 나타날 것(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됨).
④ 하나님을 아는 약간의 지식이 하나님에 대한 많은 양의 지식보다 값짐.
2) 우리가 짚어야 할 두 가지.
① 우리는 하나님을 많이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음.
- 신학을 공부하고 그것으로 누군가를 섬기는 것은 아주 좋은 일.
- 하지만 신학에 대한 관심, 하나님에 대한 지식, 기독교의 주제들에 대해 명료하게 생각하고 잘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지 않음.
- 우리는 칼뱅이 알았던 만큼이나 하나님에 대해 알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칼뱅과는 달리) 하나님을 거의 알지 못할 수도 있음.
② 우리는 하나님을 많이 알지 못하면서도 경건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음.
- 그것은 우리가 듣는 설교, 읽는 책, 사귀는 친구에 의해 좌우됨.
- 분명 그것은 기독교의 관행들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해줌.
- 이렇게 배운 것을 가지고 누군가를 돕거나 그 덕분에 좋은 평판을 얻을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은 전혀 모를 수 있음.
3)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면 우리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① 신학을 잘 알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들에 대한 접근법이 ‘균형 잡혀’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님.
② 진짜 문제는 우리가 복음주의자로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해야만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임.
③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면 과거에 경험한 불쾌한 일이나 경험하지 못한 유쾌한 일들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임.
④ 만일 정말로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는 바로 그렇다고 말할 것이며, 만일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과 단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의 차이에 좀더 명확하게 직면할 필요가 있다는 징조.

4. 하나님을 아는 증거.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1)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이 얻은 것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과 십자가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몰아내 버림(어떤 손해나 ‘십자가들’은 그들에게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음).
2)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음.
①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단 11:32).
: 공개적 행위.
- RSV에서는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확고히 서서 행동을 취하리라”고 번역됨.
- 이 말은 “그러나”(but)라는 말로 시작되어, “비천한 사람”(21절)의 행동과 대조를 이룸.
- 그러므로 이 구절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은 그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향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을 보여 줌.
- 그들은 하나님이 도전이나 무시를 받는 한 가만히 있을 수 없음. 그들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고 느낌.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이야말로 그들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게 하는 일.
- 다니엘서 중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위업’에 대해 말하는 장들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봄.
-- 이 네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었으며, 그 결과 때때로 반(反)종교와 그릇된 종교의 관례나 명령들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낌.
-- 다니엘은 특히 그런 상황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며 공공연하게 그것에 도전을 가해야 한다고 느낀 사람으로 나타남.
--- 왕궁의 음식을 먹음으로써 의식상 부정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채식만을 먹겠다고 고집해 환관장을 깜짝 놀라게 했음(단 1:8-16).
--- 다리오 왕이 기도하는 관습을 한 달 간 금하고 이를 위반하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했을 때도, 다니엘은 계속해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을 뿐 아니라, 열린 창 앞에서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있게 했음(단 6:10)
-- 이러한 행동들을 오해해서는 안 됨.
--- 다니엘은 반항하는 일에 탐닉하고, 정부에 정면으로 ‘대항했을’ 때에만 행복해하는 무모한 인간, 고집쟁이가 아님.
---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명예가 직접적이거나 암암리에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는 상황에 민감하며, 일이 그냥 진행되도록 놓아두기보다는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사람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그것에 대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도록 한다는 것을 보여 줄 뿐.
②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들의 열심과 에너지는 기도에서 처음으로 표현됨.
: 공개적인 행위에서 끝나지 않음.
- 다니엘 9장에서 우리는 다니엘 선지자가 예언된 바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의 기한이 끝나 간다는 것을 “책을 통해…깨달았을”(2절) 때, 그리고 동시에 그 민족의 죄가 하나님의 자비보다는 심판을 불러일으킬 만큼 여전히 크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을 어떻게 찾고 기도했는지를 보게 됨.
- 그는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기도하며 간구”했고,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음.
-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변치 않는 결과는 하나님의 대의를 위해 기도하는 열정으로 표현됨.
- 하나님을 아는 이들의 내적 긴장은 실로 기도를 통해서만 표출되고 경감될 수 있음.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아질수록 그러한 열망은 더욱 커짐.
- 우리에게 그러한 기도를 하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면,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기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가 아직 우리의 하나님을 거의 모른다는 분명한 표시.
3)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생각을 품고 있음.
① 우리는 하나님을 위대한 분으로 생각하는가?
- 팔레스틴을 집어삼킨 바벨론 제국의 힘과 장려함 그리고 또 다른 위대한 제국이 뒤따라 나타날 가능성, 곧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스라엘을 왜소하게 보기에 충분한 상황에 직면해서, 다니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왕의 왕이시며 주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다스리심”(단 4:26)을 이야기함.
- 역사의 모든 시점에서 하나님의 손이 작용하신다는 것, 역사(history)는 실로 ‘그분의 이야기’(his story) 곧 그분의 영원한 계획이 펼쳐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결국에 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하리라는 것을 극적으로 상기시켜 줌.
- 다니엘은 바로 그 진리를 2장과 4장에서 느부갓네살에게 가르쳤으며, 5장에서 벨사살에게 상기시켰고(18-23절), 4장에서 느부갓네살은 이를 인정했으며(34-37절), 6장에서 다리오가 고백했음(25-27절).
- 또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단 4:25; 또한 5:21과 비교해 보라)는 진리는, 2장과 9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기도들, 1장과 6장에서 당국에 도전을 가한 그의 확신, 그리고 3장에서 당국에 도전을 가한 그의 친구들의 확신 등의 기초가 되었으며, 2,4,7,8,10,11,12장에서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드러내신 모든 중요한 내용을 형성한 중심이었음.
- 하나님은 세계 역사와 각 인간의 운명에 대해 최후의 결정을 내리시며, 하나님 나라와 의는 결국에 가서 승리할 것임. 인간들도 천사들도 하나님을 저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
②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표명하는가?
- 바로 이러한 것들이 다니엘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었고, 이는 다니엘의 기도(기도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보여 주는 최고의 증거)들이 입증해 줌.
-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단 2:20-22).
-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you are righteous)…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단 9:4,7,9,14).
③ 우리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측정.
- 우리는 하나님을 이러한 분으로 생각하는가?
-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표명하는가?
- 하나님의 거룩하신 엄위,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함, 하나님의 자비로운 신실하심에 대한 이러한 엄청난 느낌으로 인해 우리 역시 다니엘처럼 겸손하고 의존하며 경외하고 순종하게 되는가?
-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이 혹은 얼마나 조금 하나님을 아는가를 측정해 볼 수 있을 것.
4)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담대함을 드러냄.
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위험을 자초한 사람들이었음.
- 그러나 그것은 저돌적인 무모함이 아니었음.
-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았음.
- 그들은 그것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계산했고, 닥칠 위험을 평가했음.
- 그들은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간섭하지 않으신다면 그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잘 알고 있었음.
② 하지만 그들은 이런 것들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음.
- 일단 자신들의 태도가 옳으며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는 그런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자, 그들은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처럼 “결과와 상관없이 기쁘게 그 일들을 행했다.”
-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고 사도들은 말했음.
- “내가 달려갈 길…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바울은 말했음.
③ 이것이 바로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가지고 있던 마음이고, 하나님을 아는 모든 사람의 마음.
- 그들은 어떤 길이 올바른가를 결정하는 일은 고민스럽고 어려움을 알지만, 일단 그것에 대해 분명히 알고 나면, 그것을 담대하게 주저없이 받아들임.
-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보는지 개의치 않고 그들과 같은 편에 서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음.
④ 우리 역시 이러한 잣대를 통해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는지를 측정해 볼 수 있음.
5)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커다란 만족을 얻음.
: 자신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은 자신들을 안다는 확신, 이러한 관계가 죽음을 넘어서 영원토록 삶 속에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증해 준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음.
① 이것이 바로 바울이 로마서 5:1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말한 평화.
② 그리고 로마서 8장에서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상세히 분석하는 평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성령이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하나님의 상속자요…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누구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1,16-17,28,30-31,33,35,38-39).
③ 이것이 바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알았던 그 평화.
- 그들은 느부갓네살의 최후 통첩인 “너희가 만일 (우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단 3:15)에 직면해서도 만족하면서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았음.
- 그들의 대답(단 3:16-18).
--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겁먹은 모습이라고는 없음!).
--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알았음!).
--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구조되지 못한다 해도-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는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결과가 어떠하든지 아무런 차이가 없음! 살든지 죽든지 그들은 만족함).

주님, 내가 살든지 죽든지 그것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이 나의 몫이니
주의 은혜로 이것을 주시옵소서.
인생이 길면, 나는 기뻐하리니
내가 오랫동안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짧다 해도 왜 내가 슬퍼하리요?
끝없는 날로 날아오르는데 말입니다.
⑤ 우리의 만족이 얼마나 광범위한가 하는 것 역시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아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임.

5. 첫 단계.
: 이와 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다음의 두 단계를 거쳐야 함.
1) 우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인식해야 함.
①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며 우리 마음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가에 의해 자신을 측정하는 법을 배워야만 함.
② 이 단계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가에 대해 보여 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해야 함.
2) 우리는 구세주를 찾아야만 함.
① 주님은 지상에 계셨을 때,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과 사귀셨음. 그래서 그들은 구세주를 알게 되었으며, 그분을 앎으로써 그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음.
② 구약 성경은 여호와께서 성육신 이전에 나타나셔서 그와 똑같은 일, 즉 사람들이 여호와를 알도록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 그들과 교제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음.
- 다니엘서에서 보이는 두 가지 사례.
-- 다니엘의 세 친구와 풀무불 속에서 함께 거닐었던 “신들의 아들과 같았던” 네 번째 사람(3:25)은 누구였을까?
-- 다니엘이 사자굴에 있을 때 하나님이 보내사 사자들의 입을 막도록 하신 그 천사(6:22)는 누구였을까?
③ 여전히 우리는 예수님을 찾고 발견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고 알 수 있음.
- 주 예수를 발견하기까지 그분을 찾은 사람들만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하나님을 안다고 증거할 수 있음.
-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을 찾으면, 분명히 그분을 찾게 되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약속이기 때문.